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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DLOW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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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 ‘이상천’
작성자 김호수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15-02-02 19:4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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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025



 

{ 지금까지 글들을 다시 훑어보니, 스스로 돌아봐야 할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당구의 정도만을 강조하는것이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기분을 주는것은 아닌가?

  지나간 일들 소소히 반추하는것, 이제와서 폭포수 되돌리자 하는것은 아닌데 ...

 

  참으로 세상은 넓고도 다양하다. 지근거리에서 잠시 바라본 당구계의 현상 극히

  위기라고 단정했는데, 판단은 제대로 진단할 수준에 이른데서 것일 수도 있다.

  앞으로는 다양하고 전문적인 의견들을 수렴하고 싶다.

 

  균형은 홀로 잡기 불가능하며, 너와 내가 다른 이해를 하기에 세상은 균형을 잡아가나보다.

  무릇 어느 집단이나 엇비슷하지만, 내가 당구라는 스포츠종목 자체와 스포츠를 주도해

  나가는 사람들을 구분해서 봐야하는데 , 사람들의 그림자탓에 당구종목 자체의 생존환경과 

  잠재성을 냉철하게 바라보지 못했던것 같다.

  어느 분야던 조직이던 역시 사람과 특히 일부 리더의 리더싶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야구나 축구리그는 세계적인 인기를 모으면서 돈과 명예가 쏠리고 있다.

  반면 당구,바둑은 새로운 인구의 유입이 급감하면서 가까운 미래에 많은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매우 커지고 있다.

  국가도 신생아출산율이 떨어지면 급속히 노령화 되면서 국가경쟁력이 급락한다.

  당구가 아주 인기가 높다면 걱정할 필요도 없다. 힘이 있으면 해결된다.

 

  이곳은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이니까 솔직히 말해도 공감들 하리라.

  지금 당구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스포츠TV에서 주로 야심한 시간에 녹화중계나하는 비인기

  종목이다. 특히 대부분 젊은이들에겐 당구클럽이 점점 먼나라 얘기가 되어가고 있다.

  가슴이 저미도록 아프다.

 

  최근까지 당구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몇백만명을 웃돌았지만, 사회적 지위가

  지금보다 낮았다고 볼수 밖에 없다.

  예전엔 모두가 가난해서 스포츠 스타도 지금같은 대접을 아무도 받았기에 상대적인

  아픔이 했겠지만, 요새같은 정보사회에서 다른 종목들에 쏠리는 부귀영화를 부러워

  하다보면, 모처럼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우리나라의 젊은 세계정상급 선수들의 

  사기와 의욕저하가 불보듯 뻔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나라가 부강해지면서 레저와 스포츠의 위상이 올라가고, 당구계 자체의

 노력으로 당구의 위상도 많이 올라는 갔다.

 그러나 한편으로 당구는 점점 좁은 '매니아'들의 세계로 좁아져가고 있는 하다.

 당구가 직면한 세상이 자꾸 바뀌니, 당구의 현재와 미래를 놓고 서로 다른 많은 주장들이

 제기되고, 대책마련에 지혜를 모아야 매우 긴박한 시기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당구단체들은 아직 이런 직면한 문제들에 공통적으로 대처하기는커녕 단체간, 단체내,

 지역간 갈등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같아 나는 이런 글로나 화를 삭히고 있다. }

 

8.사실 96년도~2003년의 수년간이 내게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것 같다.

  오랫동안 재직하던 한때 매우 나가던 회사의 위기, 절친의 사업부도로 인한 개인적 피해에

  심신이 극도로 피폐해 상황에 덮쳐온,  97년말의 소위 IMF사태는 그야말로 결정타였다.

 

  고난의 피크 싯점인 99년도의 무렵엔  퇴근후 거의 매일 술자리에서 곤드레가 되어야

  집에 가서 잠을 이룰수 있었는데, 우연찮게 다시 가까이 하게된 더구나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 국제식테이블 캐롬 나의 생활리듬을 개선하는 계기이기도 했었다.

 

 모처럼 생활에 활력소가 되어주던 당구가,내가 난처한 입장이 되어 다시 멀어져가기 시작하고

 있던 (다시 술자리 마다않고 지내던 ) 스승 K 고덕을 떠나 당구클럽을  open한다고

 연락을 왔다며칠 개업식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아마 K 내가 주동해서 그곳에서 일년 가까이 그곳의 아마튜어 동호인중 7~8명을 모아, 당시

 매우 곤궁해 보였던 K 조금이라도 돕자는 취지에서 만든,후원회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부족했겟지만 어쨋든 매월 정기적으로 정액을 모아 단체수강비조로 드리던 동호회모임이 내가

 떠난후 와해되면서 무언가 적극적 대책이 절박했던 같다.

 

 개업식 김철민 선수의 예술구시범등 행사가 있었고, 회사직원 몇명과 참석했던 나는

 그날 이후 다시 참새 방앗간 들리듯 그곳에 들리기 시작했다.

 우연이었는지 K 일부러 그랬는지 클럽위치가 바로 사무실과 집의 중간 지점이었다.

 아뭏든 시간날 때마다 들리고 (이상하게 낯을 가리는 성격은 아닌것 같은데, 고덕부터

 이후 내내 당구클럽은 군데 다니면 다른곳은 가지않는 귀소본능 비슷한 습관이 몸에

 밴것 같다), 다시 당구의 재미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K에게 새로 클럽을 시작했으니 열심히 연맹시합에 참가해서 좋은 성적을 낼것을

(특히 당시 아리랑 TV 과거 국영 스포츠 케이블 TV 인수해서 새로 출범한 SBS 스포츠

TV에서 방영되는 전국대회에서 입상하여 TV 경기모습이 방영되면, 인근지역에서 많은

동호인들이 모여들고 점차 지역 캐롬의 중심이 되가면 자연히 영업적으로도 안정을 이뤄갈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에) 종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졸지에 내가 운전면허증도 없는 K 운전사 매니저 비슷하게 대부분 전국규모

대회에 쫓아다니게 되었고, 점점 당구계의 당시 암울했던 현실과 단체의 집행부 임원들을

폭넓게 알아가게 되었다.

특히 K 충분히 입상할 있는(스승님이니까 무조건 있어보였던 점도 있었겠지만) 실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16강전 근처에서 머물고 마는 것이었다.

나중엔 거꾸로 내가 오기가 생겨 시합참가의 의욕이 떨어져가던 K 등떠밀며 다니는 경우도

있었던것 같다.

 

그러던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 당구가 무려 금메달이 10개나 걸린 종목으로 채택이

된것을 알게 되었고, TV 통해서는 보았지만 1998 방콬 아시안게임 캐롬종목에서

혹시 여러분들도 아시는 모르겠지만 '김정규 선수' 동메달을 획득하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김무순 선수4).

경악한 사실은 당시 연맹의 국제관련행정부재로 포켓부분에 우리 선수들이 출전 못하는

황당한 경우가 있었다는 일이었다. 그로 인해 연맹과 그곳의 행정실태도 내심 궁금해졌다.

 

K 후에도 전국대회 8강이내 입상은 못했지만, 나는 여러 시합장에서 당시 탑랭커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가능하면 밥이라도 한번씩은 같이 먹도록 하면서 친분을 쌓아갔다.

 

명이 황득희 선수였고, 황선수가 이상천 선수(회장이라는 호칭보다 역시 선수라는

명칭이 왕년의 Sang Lee 풍모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같이 부산 아시안게임

캐롬 대표선수가 되어 수원에서 훈련을 시작하게 된다는걸 알게되었다.

 

그곳에서 partie libre(free game=속칭 4/ ball 3개로) 대표인 그전부터 알고 지내던

김정겸 선수와 ,처음 보는 부산사나이 김효수 선수도 만나보게 되었다.

 

그렇지만, 당구인생(감히 인생이라 칭하기 매우 쑥스럽지만) 가장  전환의 계기는

수원의 국가대표선수훈련장 (코스모스 당구장 이었는것 같은데)에서 이상천 선수와 마주치게

일이었다.

 

게다가 얼마후 캐롬 훈련장소를 일산의 예전 '임윤수 당구클럽'으로 옮겼는데 나에게는

임선수도 알던 사이였고, 일산이 오히려 수원보다 가까워 시간만 맞으면 일산으로

연습구경 황득희 선수 응원차, 하다못해 대표선수와 관계자들 식사라도 제대로 한번하게

해드리자하는 심정에서 가끔 얼굴을 내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 조금 아래지만 연배도 비슷한 이상천 선수와 당구에 관하여 이런저런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조금씩 이상천이라는 사람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된것같다.

이상천 선수와는 당구이외에 관해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던것 같다.

하지만 당시 연습할때, 그리고 같이 식사할 무언가 그의 행동과 표정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에게 당구선수도 스포츠선수이고 이제 본인이 태극마크를 국가대표선수이니

식사,수면시간,체력단련 컨디션관리등에 대해 주제넘은 조언도 하였었다.

당시 눈에 너무 오랜 세월 당구선수로서 불규칙적인 식사 수면습관, 그리고 피말리는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 흔적들이 걱정으로 비쳐졌던 하다.

 

오랜 세월 바둑과 프로기사들을 가까이 하면서 지냈던 나는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했었는데, 당구계에서는 하점자가 고점자에게는 잔소리 못하는 풍조에 밀려, 감히 그에게

심하게 잔소리를 할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결국 나중에 그에 의해 당구계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되었고, 오히려 그의 안타깝고

갑작스런 타계 이후 더욱 당구계를 위해 무언가는 하나 하고싶다는 집념이 생긴것은

아마도 강경하게 건강에 대한 충고를 못한것 같은 회한 탓도 있으렸다.

 

그리하여 .....

 

{서서히 당구입문에서 소위 당구계 입문기로 옮겨 오는것 같다.

 길지 않게 부산 아시안게임과 이후 이상천 선수의 행보 , 그리고 내가 정식으로 연맹에

 이름을 걸고 이후의 몇가지 사항만 여러분과의 정보와 현실상황 공유차원에서 언급하고

 지난편에 언급한 '브롬달 50 생일 헌정사'  곧번역해 올리겠다.

 '글을 시작하면서' 프롤로그가 아니라 에필로그가 되가는 같다.

 형식이란 하찮은 것일수도 있지 않겠는가?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건지 , 저런 헌정사에서 언급되는 세계캐롬당구상황 최근사가

당구의 시스템처럼 조리있게 연결되어, 여러분들의 깊은 이해와 동참에까지 이르렀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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