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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DLOW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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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당구 성장과 쇠퇴예방 #27 'UMB/ACBC 와 수원 월드컵'
작성자 김호수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15-02-07 13: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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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263

 

{지난 #18,19,20편 칼럼에서 세계당구 주요단체들에 대해 아는대로 기술해 보았다.

 #21~26 편에 걸친 '브롬달 찬사' 번역문 연재로 잠시 흐트러진  기억을 대충 되살리기 위해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최고 상위기구인 IOC산하 세계당구총연맹 WCBS 하부 조직으로 UMB /WPA/ WSF 라는

당구의 주요 종목별 범 세계단체가 있고, 그 휘하에 각 대륙별 단체들이 조직되어 있으며,

각국 연맹은 해당 대륙별 단체에 가입함으로써 각 단체들의 일원이 된다.

 

아무래도 내가 캐롬부분 이외에는 별 전문적 식견도 없고,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우리나라가

세계당구계에 자랑해도 좋은 '수원 월드컵' 에 관해서 쓸 예정이기 때문에, 세계캐롬연맹인

UMB 관련사항 위주로 좀 더 살펴보겠다.

 

세계캐롬연맹인 UMB 휘하에는 ACBC (Asian Carom Billiard Confederaion :아시아 캐롬연맹),

CEB (Confederation Europeenne de Billard : 유럽 캐롬연맹), CPB (Confederation Pan-

americana de Billar : 미주 캐롬연맹) 의 세 대륙별 단체가 지금껏 있어 왔는데, 최근 이집트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몇 개국이 ACC (African Carom Confederation :아프리카 캐롬연맹) 를

창설하여 올해 4월30일자로 UMB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 출범하였으니,이젠 총 4개 산하기구가

존재하게 된 셈이다.

 

대한당구연맹 (KBF)이 속해있는 ACBC를 살펴보면, 오랫동안 아시아의 캐롬 종주국 노릇을

해온 일본당구연맹의 전무이사 니시오 가쿠 씨가 ACBC 창설이후 지금껏 회장을 맡고 있으며,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도쿄에서 월드컵을 수차 주최하는 등 나름 고군분투해 온 흔적들이

발견된다.

 

하지만 일본에서 포켓에 비해 캐롬당구의 인기가 쇠락한데다 80을 넘긴 고령의 회장이 더 이상

이 단체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무리라는 우려가 최근 UMB에서도 제기되어 ,이제 누가 뭐래도

세계적 캐롬강국으로 떠오른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기구가 재편되어야함은 필연적으로 보인다.

 

내가 ACBC에 관한 창설과정이나 역사자료를 찾아보고자 여러가지로 노력하였으나 홈페이지

달랑 1장뿐 전혀 관련정보를 찾을 수가 없어서 당혹스러웠다.

회원국 주소록을 살펴보니,  베트남과 태국 캐롬연맹 주소가 같은 베트남으로 되어있을 정도로 행정부재인 것 같다.

이것이 캐롬의 현주소이고, 아시아캐롬의 현실인가?  화가 난다 !

 

조만간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기구와 행정을 재편하고 일본과 신흥캐롬강국인 베트남 이외에

회원국 수를 점차 늘려 나가는 보급활동을 수반한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대만,중국,필리핀 등에는 캐롬 보급개시의 씨앗이 이미 파종은 되어 있는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환의 계기가 어찌 보면 우리 당구인 중 소수의 몇 사람의 헌신에 의해 어렵게 탄생된

'수원 월드컵' 에 의해 이미 잉태되었다고 믿어마지 않는다.

 

더더욱 최근 아시아 챔피언싶 대회도 우리나라에 의해 부활되었고, 수년간 우리나라 덕에

대회가 계속되고 오히려 ACBC나 일본, 베트남,중국,대만선수들이 달랑 숟가락만 얹는 꼴이니

누가 지금의 종주국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과거의 향수에 빠져있는 ACBC 나 UMB 회장 및 임원들의 각성과 결단이 시급하다.

IOC 산하 체육기구가 더 이상 제대로 역할은 못하면서 그저 단체의 일을 노년의 소일거리

정도로 여기는 노인들의 양로원으로 전락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

 

 

#27.(다큐)

 

2005년 6월의 대구 TBC 초청경기에 견학다녀온 이후 과연 당구가 좀 더 사회적 관심도 받고

그에 따라 당구선수 및 그 단체들의 현실적 처우도 개선되려면, 과연 어떤 실질적 노력들이

필요한 것인가, 이런저런 고민도 해보고 좀 더 당구계의 현실적 문제를 파악해 보려고 하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가끔 브롬달,산체스,세미 세이기너, 자네티, 필리포스 등이 우리나라

여기 저기서의 소규모 초청경기나 지방순회 경기에 모습을 나타내곤 해서, 짬나는대로

대회장에 참석해서 대회진행상의 언어소통도 조금씩 도와주고 같이 밥도 먹으면서 궁금했던

캐롬의 메카인 유럽과 세계의 당구관련 소식과 현실적 정보들에 조금씩 계속 접할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 조각들을 꿰맞춰 연맹과 세계진출의 야망이 있는 선수들과 나누고자 했었다.

 

그 당시 WCBS나 UMB의 홈페이지가 제대로 있는것도 아니었고, BWA 의 도움으로 가끔

간행되던 'World 3 Cushion Report' 라는 부정기발간 잡지마저 발행중단되어, 세계 캐롬관련

뉴스나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다른 방법이 별로 없었다.

 

비록 페이지 수는 많지 않았지만 전문가에 의해 편집 출간되어 매우 소중하고 전문적인

간행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매우 아쉽다.

내가 한국과 아시아쪽 뉴스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발행인이 쭉 보내주었는데 우편봉투에

볼펜으로 직접 주소가 적혀오는 것을 보고 재정적으로 얼마나 궁핍한지 짐작이 갔다.

 

내가 처음 당구쪽 인연을 맺었던 김철민 선수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서

주로 BWA 주관 월드컵에 초청받기 시작한 황득희 선수가, 2008년 BWA가 재정적 문제로

좌초할 때까지 유럽에서 주최되는 월드컵들에 참가하고 있던 상황이라, 우리선수들이 유럽

선수들과도 좀더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램도 항상 있었다.

서로 오가며 조금씩 신세지는 것 이상 친해지는 데 더 좋은 계기가 있으랴 !

 

김철민 선수가 오래전 처음 유럽대회 참가차 갔을 때,

공항에서 시합장 가려다 엉뚱한 기차를 타서 오밤중에 컴컴한 역에서

혼자 고생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두사람이 시합 참가할 때마다

항상 걱정이 앞서곤 하였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미안하지만 생각할수록 웃음도 난다^^.

 3쿠션 대가가 1쿠션 길을 못 찾으셨으니 말이다.)

낯선 곳에 가서 시차, 언어 문제에 부닥치는 것도 극복해야 할 상황인데, 그나마 반겨주는

사람들이 (시합에서는 물론 아니겠지만 ^^) 있고 없고는 정신적으로 큰 차이일 것이다.

 

그들의 선구자적 노력 때문에 그 후 우리 젊은 선수들이 선배들을 본받아 꾸준히 세계무대의

문을 두드리고 경험이 쌓이면서, 오늘날 세계대회에서의 몇 차례 우승과

UMB 월드컵 시드랭킹에도 여러 명이 진입하는 성과를 이뤄낸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당구계의 특히 대한당구연맹 내부의 상황은 점점 꼬여만 갔다.

내가 중간역할을 하여 연맹공식후원업체로 지원을 수년째 해주고 있는 기업체 측에

행여 이런 내분이 알려지지 않을까 걱정되어 정말 전전긍긍 했었다.

게다가 연맹의 국제분야를 맡아 도와주싶사 가까운 친지를 오랜 설득 끝에 막 부회장으로

영입까지 해 놓은 직후였으니 더 기가 막혔다. 내 자존심에도 깊은 상처로 저며들어왔다.

 

( 이 칼럼을 빌어 그 와중에도 수년간 연맹에 묵묵히 봉사해 주신 J 부회장께  깊이 감사드린다.

  아울러 내게 코가 꿰어 여러차례 안트워프 지역에서 틈나는대로 김/황 두 선수 운전기사 및

  가이드 노릇을 해주셨던 현지의 K사장 내외에게도 역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모두 이 칼럼을 계속 보고 계시다니 더욱 든든하다. 하마터면...^^

  게다가 지금은 Mad Park 까지 계시니 더욱 안심이다. ^^)

 

그런데 드디어 내가 칼럼 #15편에 요약 기술했던대로, 사태는 연맹 5대 M 회장이 2006년

10월 말 사임하는 지경에 결국 이르고야 말았다.

그 과정과 사연은 내가 지금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칼럼에 쓰고 싶지도 않다.

당시에는 무조건 격분만 하였으나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좋던 나쁘던 단체에서는 수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가끔 오히려 변화와 발전의 계기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회장이 공석이 되자 연맹은 이상천 회장 취임 이전처럼 다시 표류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저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회사 일도 점점 바빠져 솔직히 당구쪽은 쳐다보기 싫기도 했다.

 

그 와중에 상황파악이라도 해 보고 필요하다면 일부 중재역할이라도 해줄까 하였더니,  내가

무슨 감투 욕심이 있는 걸로 일부의 오해섞인 뒷말들과 묘한 견제까지  있는 듯 해서 두려웠고,

더 무서웠던 것은 일부 선수들이 나에게 연맹을 완전히 갈아엎는 데 동참 정도가 아니라

선두에 나서 달라는 종용에 가까운 요청까지 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다행히 몇 달 후인 2007년 3월 신임회장이 우여곡절 끝에 선출되었고 그 해 말까지

전임회장의 잔여임기를 마무리한다는 것이었다. 집행부도 대충 그대로 끌고 가려는 것 같았다.

나와 J 부회장은 어정쩡한 입장에서 일단 신임회장과 재조직된 새 집행부의 연맹운영을 묵묵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나로서는 연맹일을 당장 그만 두는것이 속 편했겠지만 그럴 경우 그만 둔 직후 후원사 대표께

그만 둔이유와 연맹내부의 최근 내부갈등 및 회장교체과정 등 소소히 아뢰야 하는데 그 후의

후원사측 조치는 뻔한 일이었기 때문에 내 기분과 입장만 고려한다는 게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새 회장과 집행부에게 후원사 지원금 중단은 연맹운영에 큰 차질을 빚을 것이고

반대세력측에는 좋은 꼬투리잡기가 될 것이 뻔한 상황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해 말이 가까워지면서 들려 오는 소식이.....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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