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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DLOW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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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Scidlow 당구단상 #18 ‘한국당구 성장과 쇠퇴예방’ “브롬달 & UMB + WCBS”
작성자 김호수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15-02-03 10: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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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112

{대부분의 당구인들이 아마도

2004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에 당구가 정식종목으로 거의 채택 뻔한 사실을  모르고 있을 하다.

당시 올림픽 28 기본종목이외에 주최도시의 권한으로 2 종목을 선택할 있었는데

15 스포츠 카테고리가 신청서를 제출하였고,

1 단계로 5 종목이 그리스 올림픽 위원회에 의해 예비선정되었는바,

당구가 참여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5 종목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종 심사에서 간발의 차이로 3등을 차지하여 1,2등을 차지한 종목에

하계 올림픽종목 포함의 영광을 뺏기고 말았고, 이후 아직까지 전혀 기회를 잡고 있다.

그렇다고 영원히 기회가 사라졌다고 보지는 않는다 . 조금씩 아는대로 밝혀 보겠다.

 

 

지난 #16 칼럼에서 국내 현존 당구관련단체들에 대해 내가 아는 범주에서 간단히 소개하였다.

일전 내가 다루고자하는 Motif 중에 세계당구계의 조직과 흐름 포함되어 있었으니,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 보는것도, 앞으로 세계적인 player,

각종 세계대회들과 아시안게임에서  당구가 처한 현실,

그리고 미래에 당구의 올림픽종목 포함 가능성등에 대해서도 언급하려면  지금이 적절한 싯점인듯 하다.

 

과정에서 당구가 어떻게 수많은 난관을 뚫고 정식 스포츠종목의 반열에 올랐고,

과거 어떤 인물들의 선각과 헌신에 의해서 오늘날에 이르렀는지를 되돌아보다보면,

아직도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현안들도 반성과 아울러 더욱 뚜렸해 질것이며,

미래를 위한 전략방향 재설정 에도 참고가 되리라 본다.

 

오늘 현재, 모든 당구관련 국제단체들은 조직상 IOC(국제 올림픽조직위원회) 산하 있다.

WCBS (World Confederation of Billiards Sports = 세계당구 총연맹) 최상위조직이며

당구경기 주종목 Carom /Pool /Snooker 기존 3 국제기구를 모태로 1992 1 25

스위스 이베르동레뱅에서의 창립총회를 거쳐 극적으로 발족한 기구이다.

 

1985 UMB (Union Mondiale de Billard =세계 캐롬당구연맹) 회장에 취임한 스위스의

Andre Gagnaux 분이 사명감을 갖고 당구를 Billiards Sports 격상시키고,

올림픽 종목으로 진입코자 IOC 규정과 기준을 통과하느라 수년간 죽을 고생 끝에 성사시킨 불멸의 업적이다.

 

사실 UMB 1959 61(스페인 마드리드 총회)

현재의 UMB 산하 CEB(유럽 캐롬연맹) 주도하에 탄생하였지만,

근원은 1928 벨기에/프랑스/네델란드 등이 주축이 되어 출범했던 세계당구연맹이 효시라 하겠다.

기록에도 1928년에 1 세계 3쿠션 선수권대회' 프랑스 리드에서 개최되어,

지금 보면 놀랍게도 이집트의 '스사' 선수가 우승했다고 남아 있다.

 

부분은 이미 1853년도부터 캐롬역사 기록이 남아있고 사실상 3쿠션 경기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미국측의 주장과 틀릴 수도 있겠으나 무시하고 작금의 현실에 중점을 두겠다.

우리나라는 1996 '대한 스포츠당구협회' 시절에 UMB 가맹하였다고 한다.

 

어쨋든 1990년에야 설립된 WPA (World Pool-Billiard Association)

 WSF ( World SnookerFederation)  오랜 설득 끝에 규합하여, WCBS 공식 주소를 스위스 로잔에 두고,

IOC 산하 정식 단체로 출범 시킨데에는 Gagnaux회장 개인과 UMB 조직의 공헌이 지대하였던 같다.

1996 7월에 잠정인정단체로 인가된 단계과정을 거쳐 1998  2 5 드디어 IOC정가맹 단체로 승격하였다.

당구인과 당구계가 정말 주목하고 감사해야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 WSF 1970년대 초반 결성들  양대 주축기구인

IBSF WPBSA 간에 2003년에 불거진 내분으로, WCBS 제안한 수습방안에도 불복하며 

IOC 중재위원회에 제소하는 내홍을 겪고있어 어렵게 출발한 세계당구통합기구의 앞날에 우환거리가 되어 있다.

 

부분은 내가 자료들을 뒤져봐도 한계가 있어 언제든 Snooker 방면에 정통한 전문가의

도움을 절실히 바라고 있는데, 아마튜어에 중점을 두는 IBSF 이미 프로스포츠로 자리잡아

실익이 별로없는 명목상 기구인 WSF WCBS 산하기구로 남아있을 이유가 별로없는

WPBSA 복귀는 희망사항으로 보인다.

가장 프로화에서 앞장 있고 상금도 다른 스포츠 크게 부럽지 않으며 시스템들이 가장 갖춰져 있는

WPBSA 빠진 WCBS 그야말로 실속없는 껍데기 단체로 전락한 셈이다.

 

부분을 정확히 기술하기 위하여 WCBS, UMB, WSF, IBSF, WPBSA 홈페이지의 자료들과

Wikipedia, 당구관련 전문 site blog들을 주간 나름 섭렵하였는데 볼수록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UMB 홈페이지 상의 기구도에는 WSF, WCBS 홈페이지 상에는 IBSF 연관기관으로 올라 있고,

관련 단체중 분란의 핵심으로 보이는 WSF 홈페이지 상에  관련조직도나 역사 부분도 전무하고

Federation 이라는 표기마저 버린 상태로 파악됐다.

 

세계당구총연맹에서도 관리 못하는 사항을 파고드는 것은 시간낭비일 하고,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의 관심일 캐롬/UMB/ACBC 얘기에 집중하고자 하며,

부분은   연구해나중에 보완, 기술하겠다. 하지만 종목을 떠나 당구인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창립 당시의 합의에 의하여 3 산하단체장이 명목상 기구인 WCBS 회장( President)

직을 일정 임기 돌아가면서 겸임한다고 하며, 현재 우리가 수원월드컵을 통해 자주 보는

UMB 회장 Jean-Claude Dupont 현재 세계당구총연맹 회장을 겸직 중이다.

1992 WCBS 이사회 멤버 9 Dupont 씨가 UMB 소속이며, PR Manager

이름이 등재되어 있는 점이 흥미롭기도 하고, 실로 20 이상의 장기집권이 경이롭기도 하다.

 

가슴 아픈 점은 WCBS 창설하고 IOC가맹 당구의 올림픽종목 진입을 원맨쑈 처럼 추진한

 Andre Gagnaux 초대 회장은 1995년에 지병으로 입원 투병하다가 이듬해 2 안타깝게도

 WCBS 7 IOC 잠정승인단체가 되는 것도 보고 영면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WCBS 홈피의 History 부분을 글을 쓰며 솔직히 처음 정독했는데 그의 선지적 자각과

추진력에 관해 알게되며 실로 가슴이 뭉클해졌었다.

 

그에 대한 WCBS 추모사에 'One man and one dream '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실로 애통하다.

이후 당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는 기회를 2번이나 아깝게 놓치게 되는데,

아마도 분이 생존했더라면 달라졌으리라는 생각이 간절히 든다.

당구계에서 필요한 인물들은 이리 단명한 것인지 .......

 

부분과 UMB, ACBC (아시아캐롬연맹) 대해서는 나중에  상술하고자 하며 재미없더라도

당구의 역사를 일부라도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과정이라도기억들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원래 편으로 나누려 했는데 오히려 연결이 끊어질 같아 한꺼번에 올린다. }

 

#18

 

아침부터 서둘러 경기장인 대구 인터불고 호텔 도착하니 고창환 원로께서 반갑게 맞이하여 주셨다.

나는 TBC 당구방송 동영상을 통해 해설자로 활약하신 분이 구면인 셈이었지만,

분에겐  내가 연맹 고문에 위촉된 얼마 되었으므로 나와는 진짜   대면이었다.

하지만 역시 당구가 윤활유 작용을 하는 인지 금새 스스럼 없이 대화를 있었다.

 

경기장인 그랜드 볼룸에 내려가보니 이미 시합이 진행되고  있었고 대구 TBC-TV 기술진이 경기를 촬영하고 있었다.

시설 모든 여건이 매우 훌륭하게 구비되어 있었고 TBC 제작팀의 전문성과 경험도 느낄 있었다.

 

 

서둘러 도착한 터라 잠시 건물 밖으로 나와 호텔 주변을 둘러보았다. 금호강이 내려다 보였다.

사실 대구는 나의 고향이다.

오랫만의 귀향이라 풍경이 많이 바뀌었는 데도 전혀 낯설지 않게 눈에 새록새록 담겨 왔으며,

금호강 위로 불어오는 바람결을 타고 고향의 공기는 달큰하게 가슴을 채워 오는 같았다.

 

6.25 전쟁 와중에 대구에서 출생하였고, 3 어머니 품에 안겨 서울로 이사하였다고 한다.

외삼촌 분과 고모가 대구에 사셔서 국민학교 방학때는 기차를 타고 내려오곤 했는데.....

기억들은 뚜렷이 나고, 모르는 사이에 대구가 우리나라 국제식 캐롬의 메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것도 운명의 일부인가 하는 생각에 희죽희죽 웃음이 나왔다.

 

사실 내가 대구 인터불고(Inter-Burgo) 호텔이 시합장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방문을 결심한 데에는,

호텔 설립자인 권영호 회장 이란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했다.

 

맨주먹으로 원양어선을 타다가 아프리카 구석 앙골라에서 크게 수산업으로 성공하여,

유럽의대표적 한상(韓商)으로 성장하고, 고향 근처 대구에 스페인어로

'모두의 마음과 뜻을 함께하는 화목한 마을' 이라는 뜻의 호텔까지 설립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당시 신문지상을 그에 대한 성공스토리가 도배하다시피 했는데,

나는 그가 그렇게 거부가 지금도 국산 소형 국민차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존경스럽기도 했지만,

과연 부하 직원들도 행복한 표정들일까  직접 눈으로 관찰해 보고싶은 장난기 섞인 호기심도 누르기 힘들었었다.

 

초청경기는 토브욘 브롬달, 다니엘 산체스, 세미 세이기너, 마르코 자네티, 토니 칼센,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 6명의 유럽 상위랭커들과 우리나라 최재동, 이홍기 선수들간의 8 간의 -리그 형태로 벌어졌다.

시작부터 최재동 선수가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여 진행자들도 고무되어 있었다.

 

날이라 비교적 화기애애하게 진행되는 했으며 관중석에 앉아있다보니

자연스레 시합중이 아닌 초청선수들과 이런저런 얘기 소곤거리며 어울리게 되었다.

세미는 전에 '이상천' 편에서 언급한대로 구면이었고, 브롬달/산체스/자네티/칼센 등은 이미

99 서울 월드컵 봤던 기억이 있어 나로선 낯설지 않았으나 필리포스 만은 처음 보는 젊은 선수였다.

그리고 음전한 서양 여성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브롬달의 부인이었다.

 

시합 진행으로 바쁘던 고창환 원로가 일단 시합을 마치고

다시 정식으로 소개를 주어 모두와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고, 내가 선수 전원과 관계자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였다.

초청선수들이 내가 연맹을 대표하여 공식방문한 걸로 여기는 같아 조금 쑥스러웠다.

 

호텔서 멀지 않은 식당이었는데, 날씨도 좋고 참석자도 30 정도 되다보니 실내가 좁아 

식당 정원에 갑자기 자리를 마련하여 전부 둘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말들은 서로 통하지 않았으나 당구란 공통분모 탓인지 너무도 즐거운 분위기였다

휘영청 달빛 아래 잔디밭 위에서 먹는 고향의 밥은 달디 달았다.

 

맥주와 소주를 곁들여 세미가 좋아하는 고기와 이런저런 한식 안주를 흡입하며 각자의

한국 추억담들 중에, 얼마전 작고한 이상천 회장에 대한 많은 얘기들도 자연스레 나왔다.

그가 미국에 있을 라스베가스에서 있었던 번의 월드컵 대회 이야기, 그가 베풀었던

멋진 파티들, 그의 독특한 샷들과 유럽 선수들에게는 다소 생소했던 한국형 1 뱅크,2뱅크

(속칭 완가락,투가락) 샷을 배운 경험당 등등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브롬달 이상천 회장 따라 한국 왔을  '직쏘우'라는 게임을 했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얘기하는데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하다가, 나중에 알고보니 바로

 '즉석(죽방?)'  얘기라서 모두가 배꼽을 잡고 한참 웃었다. '먹박'소리엔 뒤집어지는 알았다.

 

클루망 (며칠전 우리 카페회원이 되신 nahmdh 님에 의하면 클루망이 벨기에 사람중에서도 

프랑스계가 아니라 네델란드 계이므로 '퀼레망스' 맞으며 그리 불러주면 매우 좋아할 것이란 조언이 있었다)

선수도 같이 어울려 했는데, 땄을 경우 반드시 돌려주곤 했다고 하면서,  

미국이나 유럽의 당구클럽에서 '직쏘우' 경우 공공장소에서의 도박으로 현장연행 되거나 문제가 된다는 얘기도 나왔었다.

이는 깊이 새겨 들을 얘기다.

 

아무튼 한국에만 있는 게임형태라며 흥미로워들 했는데, 나는 한편 항상 당구장에서의

죽방이 얼마나 당구의 위상을 실추시켜 왔는지 폐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었으므로

내심 불편하기도 하였다.

LA 우리 교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미국 대도시의 한국식 당구장에 들렸을

내기당구나 구석에서 현금이 왔다갔다하는 고스톱 판이 벌어지는 적들이 있는데

경찰이 들이닥치면 어쩌려고들 저러나, 그리고 한인사회 전체의 망신이나 안줄까 우려되곤 했었다.

 

나는 고창환 원로께서 TBC해설위원으로, 성덕대학 스포츠 당구학과 교수로서

그리고 이번 초청경기 성사를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등을 모두에게 피력하고 자리를 마무리하고자 했다.

 

브롬달 내외는 대부분 내내 조용히 앉아 있었으며 부인이 원래 독일 유도선수였다고 했는데

매우 지적이고 차분한 모습이었던것이 기억에 남는다. 브롬달 부인이

지금 그들이 거주하는 독일의 어느 도시에서 매우 유명한 이태리 식당의 매니저로 근무한다는데

유럽 시합에 갔던 몇몇 우리선수들도 박우진 박사(Mad Park) 같이 들렸다는 얘기도 들은것 같다. 부럽다 !

결과적으로 브롬달이 모국 스웨덴을 떠나 독일에 정착한 것은, 부인의 한판승 인것 같다.

 

그런데 자리를 파하려는데 산체스와 자네티간의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약간 얼굴이 벌개진것 같았다. 그래서 슬쩍 엿들어보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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